메모장



요한복음 4장 27~42절 요한복음 강해(1)

 

제목: 예수님의 양식

성경: 요한복음 4장 27~42절


지난 주에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셔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방법을 알려주신 것에 대해 공부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왔습니다. 그 사이에 제자들이 동네에 가서 먹을 것을 사온 후 “랍비여, 잡수소서” 하니 예수님께서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서로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예수께서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려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예수의 양식’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뜨거운 사막에서 건너오느라고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먹을 것을 구하려 동네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사마리아 사람들이 많이 우물가에 모였고, 제자들이 사온 음식을 드리니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곧 제자들이 생각하는 양식과 예수님이 생각하는 양식이 다른 것을 말씀하십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마태복음 4장 4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신 말씀을 다시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사단에게 시험을 받기 위해 성령에 이끌리시어 광야로 가셨서 40일간 금식하시고 주리셨습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극심한 육적 고통 가운데 이르신 것입니다. 그 때에 사단이 말하기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4:3) 라고 말합니다.


이 장면은 사실 사단이 예수님께 대적하는 장면입니다. 사단은 육신이 가장 연약해져 있는 예수님 앞에 피조물이 사는 것이 육신의 요구를 채우는 일이 먼저이지 하나님 먼저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러한 것이 증명이 되어야만 피조물인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거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너무나도 시장하신 나머지 돌을 떡이 되게 하여 드셨더라면, 사단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단에게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라고 대답하심으로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사단의 주장은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이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참으로 엉터리 같은 주장인데 사단은 그러한 엉터리 같은 주장을 증거 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습니다. 또한 그러한 엉터리 같은 주장으로 지금도 온 세상을 속이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 이라는 말씀은 이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이러한 능력으로 살 것이지 떡만이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으로 사람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고 또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드시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음을 말씀하심으로 사단의 주장이 옳지 않음을 증거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것들만으로도 살 수 있다 라고 주장함으로 자신도 피조물들의 왕이 될 수 있음을 증거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유혹하여 넘어뜨리지 못함으로 이 싸움에서 지고 말았습니다. 이 싸움은 육적인 것으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사단의 대적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싸움은 사실 사단과 하나님과의 싸움입니다. 사단은 우리를 혈과 육의 약점으로 시험합니다. 만일 우리가 사단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므로 육신의 생각을 그대로 고집하고 있거나 그 생각대로 살고 있다면 사단의 편을 들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영육간의 싸움에서 진다면 사단이 주장이 옳음을 증거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우리가 사는 것이 육적인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깨달아 알고 있으므로 그 분을 믿는 믿음 가운데에 살 때에 사단의 유혹 앞에 굴복당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육적인 시험을 성령의 생각으로 이겨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솔직히 우리 예수님도 인간이셨으므로 말할 수 없이 배가 고팠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우리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의 양식을 더 중요시여기고 있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제자들은 먹을 양식을 거두는 추수 때가 되려면 앞으로 넉 달이 더 지나야 한다고 생각한 방면, 우리 예수님은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말씀하신 것을 다시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직도 제자들은 육신의 양식에 관심있는 데 반하여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양식에 관심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하고 일깨우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고, 그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오늘 본문 36절의 말씀대로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는 것입니다. 추수가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열매를 모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지금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하고 말씀하셨고,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세상의 열매가 아니라  ‘영생에 이르는 열매’에 더 관심이 있으셨고, 이 열매를 거두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영생에 이르는 열매’에 대해서 자세히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한마디로 ‘영생에 이르는 열매’는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영생의  열매를 말합니다. 사실 요한복음이 기록된 목적도 예수를 믿음으로 이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요한복음 20장 31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영생은 ‘누가 하나님의 백성인가?’ 혹은 ‘누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가?’라는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내세의 생명을 보장받는 것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죽음 이후에 영혼이 ‘천국’에 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종류의 영생을 포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사용된 ‘영생’의 궁극적 의미는 정체성에 관한 것으로 ‘그가 진실로 하나님의 백성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었다는 말은 그가 하나님의 참 백성이 되어 하나님을 참으로 예배하는 자가 되었다는 의미(4:23)이고, 이 땅에서 하늘의 권세를 가지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1:12). 또한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함으로서 마침내는 다시 살아나게 될 자임을 의미하는 말입니다(11:25-26).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거두는 예수의 사명이 사마리아인들의 믿음 사이에서 언급된 것이 이 단락의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입니다. 쉽게 말해 이방인처럼 취급당하던 사마리아인들과의 만남 한 복판에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참 백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4:36), 그 일이 성취되고 있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4:34). 사마리아인들의 예수를 향한 고백인 ‘세상의 구주’라는 말(4:42)은 이런 맥락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됨이 혈연이나 지연에 얽매여 있지 않듯이 예수께서는 온 세상의 구주가 되시며 예수를 통하여 누구나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kosmos)’이란 단어는 특별히 요한복음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단어입니다. 요한복음은 이 세상을 향한 뜨거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이 세상이 예수를 알지 못하여 어두워졌지만(1:9-10) 하나님은 끝까지 세상을 사랑하십니다(3:16). 여전히 악하고(7:7)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15:18)이지만 예수께서는 여전히 세상을 위하여 중보하시며 온 세상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17:21). 현재 세상은 세상 임금인 마귀의 권세아래 놓여 빛을 보지 못하지만 예수께서는 세상의 구주가 되셔서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세상 임금의 권세를 심판하실 것입니다(16:11). 예수의 사역으로 이 세상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참 백성이 됩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세상의 구주가 되심의 의미입니다. 이 역사는 유대인들에게서 시작하여 사마리아인을 거쳐 온 세상으로 확장됩니다. 구원이 유대인으로부터 난다는 말씀(4:22)은 이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사마리아 부정한 여자의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메시야인 것을 발견하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오자 그 나오는 무리를 향하여 말씀하신 말씀입니다. 이 영생에 이르는 열매는 영생을 얻을 백성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가 정말 정확히 이해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두 가지 열매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행위의 열매요, 다른 하나는 영생에 이르는 열매입니다. 그런데 천국에 가려면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열매를 맺어야 천국에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21:43)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라고 말씀합니다. (갈5:22)은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5:23)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수많은 신앙인들이 이러한 열매를 맺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열매 맺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러한 열매들을 잘 맺고 있습니까?


그러나 오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행위의 열매가 아니라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들은 행위의 열매를 맺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행위의 열매로는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율법의 행위로 의로워지려고 해도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롬3:20)은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요15:4)은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로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다음 절(요15:5)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열매를 맺으려고 온갖 고생을 다 합니다. 그러나 나무에 붙어있지 않은 가지는 아무리 노력할지라도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가지는 그저 나무에 단단히 붙어있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지가 열매를 맺는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열매는 나무가 맺게 하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나무가 책임져서 뿌리와 잎을 통해 필요한 영양분을 모아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요15:7)에도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와 하나가 되려면 예수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을 영접하는 복음의 말씀입니다. (요1:12)을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어떻게 영접합니까? ‘그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그 이름을 어떻게 믿습니까? (마1:21)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름을 믿는 것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즉 예수로 말미암아 나의 죄가 100% 사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어지는 사람은 예수를 영접한 사람이요, 예수를 영접한 사람은 저절로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처녀가 남자를 영접하면 아들이라는 귀한 열매를 맺지만 처녀가 아무리 남자를 좋아해도 영접하지 않으면 생명을 탄생시킬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영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런데 (요1:13)은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고전15:50)에도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였다는 말은 인간의 노력으로 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처녀가 남자를 영접하지 않고 자기 노력으로만 아들을 낳을 수 없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역시 절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낳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한복음 15장에서 말하는 열매는 행위의 열매가 아니라 영생에 이르는 열매인 것입니다. 다시 한번 예수님이 어떻게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말씀하셨는지 (요4:35)을 살펴봅시다. “너희가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요4:36)“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사마리아 사람들은 아무런 행위의 열매를 맺지 않았으나 단지 예수님을 영접하므로 영생에 이르는 열매가 된 것을 말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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