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중국 노나라 곡부에서 아버지 숙량흘과 어머니 안징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조상은 전왕조인 은의 자손이 봉함을 받은 송나라의 공족이었으며 공자의 3대 전에
노나라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그의 집안은 송나라 왕실에서 연유된 명문 가문이었으나
몰락하여 노나라에 와서 살게 되었으며, 아버지는 시골의 무사였습니다.
공자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되었습니다. 집안이 몹시 가난하였으나 마을의
늙은 선생 밑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였지요. 어릴 때부터 제사 흉내를 내며 놀았고.
고실, 즉 예로부터의 종교의례·제도·관습에 밝았다고 합니다.
17세 때부터 말단 관리가 되어 일을 보면서 노나라의 대학에서 《시경》과 《서경》 등
을 배웠고, 또 여러 가지 의식을 맡아보는 관리에게서 예법, 음악도 배웠습니다.
공자는 《시경》과 《서경》의 저자인 주공을 청년 시절부터 사모하였고, 평생 동안
마음의 스승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공자는 30세쯤 되자 관리로서의 지위도 오르고, 또한 학문도 많은 진전을 보였는데,
정치는 법률보다는 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무슨 일이든지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였고, 주공이 다스리던 시대처럼 예의가 바르고 평화로운 세상이 공자의
이상이었습니다.
36세 때 노나라에 삼환(맹손·숙손·이손의 권세가)의 난이 일어나 노나라의 왕 소공이
신하인 계씨에게 쫓겨나 제나라로 도망갔는데, 공자도 그 뒤를 따라 기원전 517년에
제나라에 갔습니다. 거기서 음악을 논하고 경공에게 정명주의적 정치 이상을가르쳤다고
합니다. 경공은 공자를 고문으로 용하여 이를 실시하려 했으나, 예절의 번잡함과
비현실적임을 지적하여 반대하는 대부 안영의 진언으로 좌절되었다고 하지요.
이에 실망하여 2년 만에 귀국하여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46세 때 중도재가 되었습니다.
공자는 52세가 되었을 무렵 대사구로 지위가 올랐는데, 삼환씨의 세력을 꺾으려 했으나
실패하고, 계환자가 주위 나라의 계략에 속아 쾌락에 빠진 것을 만류하다가 대립하게
되어 벼슬직을 사직한 후, 14년 동안 제자들과 위·송·조·정·진·태등 여러 나라를 여행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도 공자를 등용하지 않았는데, 왕들은 올바른 길보다도 효과가
빠른 부국강병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자신의 이상이 지금 당장 실현되지
않을 것을 알자 미래에 희망을 걸고 교육가로서의 생활이 시작했습니다. 공자는 중국에서
예부터 전해 내려오던 고서들로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공자가 스승으로서 제자들의 교육에 임할 때 목표로 삼은 것은 '군자(君子)'의 양성
이었습니다. 공자는 인격·능력·교양을 지닌 인재의 육성을 교육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는 그 이상목표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예(禮)의 학습·습득(習得)을 제자들에게 부과
했습니다. 그는 예를 실천하는 인간에게서 인간의 주체성, 즉 '인(仁)'을 발견했습니다.
공자의 사상의 근본은 '인'으로서 이러한 인을 지향하고 예에 정진하는 사람이 군자요,
그렇지 못한 사람은 소인으로서, 군자가 덕을 생각할 때 소인은 이익만을 생각하며,
군자가 보편적이고 비상대적임에 비하여 소인은 상대적이요 비보편적이라고 역설,
인간을 인간적으로 이분하여 생각하였습니다.
공자는 72세가 된 해인 기원전 479년에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습니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후 제자들은 스승이 남긴 어록을 모아서 《논어》라는 책을 저술
하여 공자의 가르침은 유교로서 오랜 세월에 걸쳐 중국에 전해 내려와 천 수백 년에
걸쳐 중국 사회의 정치, 윤리 도덕의 규범이 되었는데, 한국·일본 등 중국의 주변 국가
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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